영화 속 삶의 한 장면, '하나와 미소시루'
오랜만에 잔잔하고 은은한 일본영화 한 편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올해 4월쯤 개봉한 <하나와 미소시루>다. 논픽션 에세이로 출간된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유방암 판정을 받은 ‘치에’가 그녀의 남편과 딸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결혼을 앞두고 악성 유방암 판정으로 왼쪽 가슴을 절개해야 할 상황에 놓인 ‘치에’. 힘겨운 항암 치료를 견디고 결혼했지만 아이는 포기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과거 아이 문제로 이혼까지 했었던 ‘싱고’. 그러나 그들은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결혼을 결심한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치에’가 임신에 성공한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것은 임신 중에는 여성 호르몬이 증가하기 때문에 암이 재발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치에’는 지난 시간 병과 싸워야 했던 고통의 시간 때문에 고민한다. 그러나 치에의 가족들은 물론 남편, 의사까지 그녀가 아이를 낳기를 바란다. 재발을 무릅쓰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 쪽으로 쏠리는 영화의 시선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는 한다. 심지어 ‘치에’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네가 죽더라도 아이를 낳으라는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 물론 나중에 아버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만약 현실이었다면 임신 중 주변의 반응은 그녀의 의지보다는 상황에 떠밀리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딸을 무사히 낳으면서 부부는 더 편안해지고 즐거운 일상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편안한 일상 속에서 또다시 불행이 스며들게 된다. 암이 재발한 것이다. ‘싱고’는 치료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찾는 중에 산속에서 민간요법으로 많은 병을 치료했다는 사람을 알게 된다. 그 사람의 말대로 1년간 미소시루(된장국)와 현미밥을 먹으며 생활습관을 개선했더니 암이 없어졌다. 그 뒤로 ‘치에’는 정기 검진을 거부한다. 재발과 치료를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치에’의 건강은 다시 안 좋아졌고, 그때부터 어린 딸 ‘하나’에게 미소시루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 ‘병이 얼마나 희망을 산산조각 내는지.’ 결혼 전 항암 치료를 받으며 내뱉은 치에의 독백이다. 그제야 치에는 단호했던 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오랜 투병생활을 겪었던 아버지가 사는 데 힘이 되었던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딸 ‘하나’를 보고 깨달은 것이다. 산산 조각난 희망 속에서 그녀가 남은 인생에 맞추고 싶었던 조각은 ‘하나’가 ‘미소시루’를 제대로 만들 줄 아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칼 하나 잡기도 버거운 어린 아이에게 집요하게 미소시루를 끓이게 하는 것은 지나친 행동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치에’에게 미소시루는 잠시지만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던 희망이었고, 딸 ‘하나’가 자신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치에는 그 순간들을 블로그에 올리며 기록한다. 그래서 평범하게 아이에게 요리를 가르쳐 주는 장면이지만 그 속에 느껴지는 감정은 꽤 묵직하다. 미소시루는 우리나라의 된장국과 비슷하지만 그 맛은 조금 더 맑고 순하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와 많이 닮았다. 영화 속에서 항상 ‘치에’는 은은하고 맑은 미소를 띠고 있다. 그러나 늘 뭉근히 끓고 있는 미소시루처럼 고통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묵직하고 힘든 이야기를 영화는 최대한 맑고 순하게 표현했다. 이를 어떻게 느끼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 조부용 dn5445@naver.com) /영남장애인신문 제휴사
영화 '하나와 미소시루'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