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에 있는 건축설계회사인 동아건축 구춘모 소장(44세)은 청각언어장애인이다. 구춘모 소장은 3살 때에 열병을 앓아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몸에 열이 심하게 나는 병을 유아기에 겪게 되면 청각이나 시각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구 소장의 부모는 청각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고 노력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5세 때에 대구보명학교를 찾아가 언어치료를 받기 시작하였고, 매주 두 번씩 자바라가 쳐진 방에서 언어치료사와 반복적으로 그림 낱말카드를 보면서 같은 단어를 수없이 되뇌었다.
그러나 직접 듣고 배워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하는 말도 소리가 제대로 나는지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입으로 내는 소리가 이럴 것이라는 짐작과 반복으로 소리 흉내내기란 너무나 지겹고 다른 아이들이 하지 않는 굳이 말을 하기 위해 이런 특별한 고생을 해야 하는지 슬프기도 하였지만, 부모님들이 거는 기대를 생각하면 착한 아이로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정상화를 위해 땀을 흘렸다.
그렇게 3년이나 언어치료를 받았지만 알아듣기 힘들지만 소리를 내기는 한다는 정도에서 만족해야만 했다. 명료한 소리를 내는 것은 청력 없이 흉내내기로 도저히 그 한계의 벽을 넘기란 힘겨운 일이었다. 말을 일부 알아듣는 것이 기적 같기도 했지만, 반복해서 말해도 통하지 않을 때에는 앵무새가 된 기분이었다.
명확하지는 않으나 익숙하게 들어온 사람이면 어느 정도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라도 자신의 표현을 하고 소통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청각장애 학교는 도 단위에 한두 학교가 있는 정도라서 집이 영천에 있어서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일반학교를 다녀야 했다. 선생님의 입모양을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말을 알아 듣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자세를 바르게 하고 입모양을 뚜렷하게 발음해 주는 것이 아니라 칠판에 글을 쓰면서 등을 돌려서 말하기도 하고, 말이 너무 빨라서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일부분이 찢어진 책의 글자 맞추기를 하듯이 허둥대며 공부를 했다. 그러나 맞추어 놓은 그 글자가 정답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은 절망하게 하였다.
공부의 상당 부분은 수업시간 외에 별도의 시간을 내어 독학을 하듯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자신이 공부한 것이 바르게 알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아무도 이끌어주지 않는 길을 홀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저 피하거나 대화가 통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뒤쳐지거나 무시를 당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길밖에 없었다.
국사나 사회 같은 암기과목은 그나마 독학하기가 수월했다. 그러나 영어나 국어와 같은 어문학과 수학과 같은 높은 수준의 집중과 정답도출 과정을 요구하는 과목에서는 독학의 기초를 닦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음성과 언어의 연결고리는 정말 수수깨끼 같았다.
그렇게 독학을 하는 데에 한계를 느끼며 어깨가 쳐져 있을 고등학교 시절에 방학 때에 대구에 나가 학교를 다니던 이웃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박창영이다. 구 소장은 그를 창이라고 부른다.
언어는 ‘미음’과 ‘비읍’처럼 입술을 붙였다 떼면서 내는 소리가 있고, ‘시옷’과 ‘지읒’, ‘치읓’과 같이 이 사이로 바람을 보내며 소리를 내거나 이를 모았다가 벌리면서 내는 소리가 있고, 혀나 입모양을 펴거나 모으거나 하면서 내는 소리가 있는데, 혀는 입 깊숙이 있어 구화를 할 때에 눈으로 확인하기가 어렵고, 입술 모양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아서 입술소리 다음으로 발음이 쉬운 그의 이름 중간자를 구 소장은 호칭으로 약칭해서 부른다.
청각장애인은 수화를 할 경우 상대의 특징이나 별명을 지어 이름 대신에 부르는 것이 보통이고, 언어장애인의 경우 이름 중에 가장 부르기 편한 한 글자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박창영 소장은 고교시절 친구로 다가와 공부를 하는 고행을 알아가는 재미로 바꾸어 주었고, 구 소장의 입장을 잘 이해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도 하고, 격려해 주고 꿈을 가지도록 해 주었다. 요즘말로 동료 상담, 피어 티칭이었다.
세상에는 아무리 주려고 해도 받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 것도 주지 않아도 많은 것을 받아가는 사람도 있다. 부모나 교사가 지식이나 걱정을 아무리 주어도 하나도 자식에게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친구가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롤 모델이 되어 닮고자 하는 것만으로도 꿈을 가지고 즐거운 생활을 꿈꾸게 하기도 한다.
방학이 되면 친구는 늘 친구를 찾아 달려와 주었고, 학기 중에는 친구를 만날 방학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었다. 요즈음과 같이 카톡으로 대화가 가능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구 소장은 친구와 같이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친구와 같은 꿈을 자신도 모르게 꾸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 결과 두 사람은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지망하게 되었고,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로 나란히 입학하게 되었다. 시나브로 서로가 소중한 보석이 되어 있었다.
청각장애인들 중 그림에 재능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림은 언어와 달리 청각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언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에 예술을 더하면 미술이 되는 것이고, 과학을 더하면 건축설계가 된다. 청각이 아닌 시각적 언어는 건축학이 적성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하였다.
대학 시절 친구는 통역사가 되어 주었고, 다른 학생과 동등하게 수업에 참여하게 해 주었으며, 꿈을 구체적으로 키워 나가는 데에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전공이 같고, 같이 생활을 하니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구 소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천리안 수화사랑동호회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동대구 언어치료센터의 말을 빌자면, 언어는 패턴과 질서의 덩어리다. 언어치료는 패턴과 질서의 내비게이션이어야 하는 것이지, 치료 목적지를 찍어주는 내비게이션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구 소장은 젊은 청년으로서 사회에 농문화를 알리고 인식을 개선해 보고자 인터넷 활동을 하면서 전공을 살려 건축사의 길을 열심히 걸었다.
친구가 먼저 건축사 시험에 합격하였고, 구 소장은 2년 후에 합격을 하였다. 배우는 것보다 가르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더 잘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구 소장에게 시험을 준비시키느라 도와주고자 준비하는 것이 오히려 친구는 건축학에 대해 더 많이 알게 하였고, 대학에도 출강을 하는 전문가가 되었다. 가르치고 도와주기 위해 재대로 알 수밖에 없었다.
현재 구 소장과 친구는 각각 따로 건축사 사무실을 차려 일하고 있는데, 동업자로서 이렇게 서로 도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각별하다.
구 소장이 맡은 건축설계 중에서 관급 용역사업이 있었는데, 노인회관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구 소장은 장애인이지만 편의시설에 대하여 새로이 하나하나 공부를 해야만 했다. 더욱 흥미가 가고 애착이 가는 분야였다.
한국장애인개발원에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인증) 심의를 받는 데에는 지적한 것들을 반영하면 되었고, 보통 발주자가 장애인을 위한 설계에 비용이 늘어나므로 일부분은 지적사항을 반영하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는데, 설계사가 장애인이어서인지 발주자와 협상은 오히려 수월했다.
그런데 BF인증 심의를 받기 위해 발표를 하고 심의위원과 질문과 응답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구 소장은 언어장애인으로 사람들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청각장애가 있어 말을 들을 수 없으니 발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하자, 친구는 장애인을 위한 설계를 심의를 받는 과정에 장애인 당사자가 걱정을 해야 한다면 잘못된 것이라며, 오히려 장애인이 직접 발표를 해야 의미가 있으니 권리라 생각하고 자신을 가지고 하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원활한 진행을 돕고자 친구는 자신의 일을 팽개치고 서울로 기꺼이 같이 와 통역을 자처해 주었다. 구 소장은 심의위원의 기대와 격려 속에 발표를 직접 하였고, 심의위원과의 소통은 친구가 도와주었다. 친구와는 너무나 익숙하여 서로 말을 잘 알아듣기 때문에 친구는 큰 도움이 되었다.
구 소장은 발표를 마치고 설계를 통해 장애물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에 자신이 일하고 있음에 매우 고무되었다. 더욱 당당히 친구와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 다짐도 했다.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 속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더욱 아름답고 그 세상을 모두 얻은 기분이었다. 사실은 세상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였다.
장애인에게 동반자는 매우 중요하다. 가족만이 동반자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친구와 서로 자극하고 도우면서 우정을 나누는 젊은 시절의 생활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 것이다. 친구의 역할을 가족이 대신할 수 없다. 학교는 바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과정을 가르치는 곳인데,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친구가 맡아 줌으로써 구 소장은 통합교육의 성공자가 된 셈이다.
특수교육을 전공한 사람이 특수하게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그리 멀리 있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함께 해 주는 친구가 손잡고 사회로 나아가는 학교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청각언어장애인 구춘모 동아건축사무소 소장과 절친 박창영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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