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헤미야 8:10) 하신 말씀과,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편 374) 하신 말씀은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능력(힘) 중의 능력이 바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누구보다 무엇보다 기뻐하여야 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 다음의 제2인자의 위치에 이를 수 있도록 지음받았습니다. 사람이 이런 특혜에 대해 하나님을 가장 기뻐하게 되면, 그 다음의 특혜가 바로 땅과 생물들을 정복해 다시릴 수 왕권을 갖게 됩니다.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우주만물을 다스릴 수 있다는 뜻이며, 우주만물을 다스릴 수 있다는 건 그들보다 강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물들보다 힘이 강하면 여유롭고 풍족한 가운데서 왕권을 행사할 수 있으나, 저들보다 힘이 약하면 마땅히 다스려야 할 자들임을 알면서도 그들을 온전히 다스리지 못하고, 또 대적하고 물리쳐야 할 주적(죄악)임을 버젓이 알면서도 그것들을 완전히 제압해 굴종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들의 위협 아래 공생공존할 수 밖에 없는, 즉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직자들이 이적행위 정치인들의 공갈협박을 받으며 불안한 통치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됩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아내(왕후)된 지위로 지음받았으면, 마땅히 하나님의 뜻과 말씀만을 듣고 행하여야 할 정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한 반역자 사단의 유혹을 받아 그의 가르침을 따라 행동하였기 때문에 이것이 영적인 간음 행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과 만물로부터 사랑받고 존경받아야 할 제2인자(자녀)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며, 그 후에 모든 사람들은 더욱 사단(짐승)의 습성에 젖어들어 거짓되고 음란방탕하고 부패타락하고 포악무도하게 되어 언제 잡혀 죽을지(처형 당할지) 모르는 짐승(사형수)들로만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생존이 이런 사형수의 삶인 줄도 모르고 무지한 짐승들처럼 천방지축하며 살게 되자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님으로 하여금 사람의 육신을 입혀 사람들을 개과천선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몸에 밴 짐승(사단)의 습성(죄악)에서 벗어날려면, 예수님을 믿은 그 시점부터 사단의 사고방식을 대적해 싸워 이겨야 합니다. "이 땅에 행음하는 자가 가득하도다 저주로 인하여 땅이 슬퍼하며 광야의 초장들이 마르나니 그들의 행위가 악하고 힘쓰는 것이 정직하지 못함이로다"(예레미야 23:10) 하심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진로를 올바로 깨달은 신앙인들은 그 때부터 주변 사람들들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게 됩니다.
이런 집중 포화를 받으며 한 평생 살아가야 할 신앙인들에겐 끊임 없는 고통과 환란이 계속됩니다. 참된 신앙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정직하게 살기 때문에 저들의 말 같지도 않는 말, 곧 "인생은 그렇게 고지식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악한 충고를 들으며 억울하게 멸시천대를 받으며 살게 됩니다. 이 같은 악순환을 견디다 못해 배교(背敎)하는 신앙인들이 많으며 또 안티 기독인으로 변해 지금껏 듣고 배운 성경말씀에 대해 악플을 달아 하나님을 거짓말장이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이 이런 문제를 강하게 대처할 능력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잠시 견디다 메말라 버리는 풀포기가 되든지 아니면 하나님과 세상을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마귀의 종들이 되고 맙니다.
사도 바울이 정직하고 올바른 말씀만 세상에 반포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얻은 것이라고는 고작 멸시천대와 핍박과 감옥살이 뿐이었습니다. 여느 세상 사람들이라면 조금만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하늘의 하나님과 세상 나라와 이웃 사람들을 향해 원한을 품고 왜 자신이 부당하게 당하는 억울한 일들에 대해 원수를 갚아주지 않느냐 하며 원귀가 되어 울부짖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보다 몇천만 배 더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그들처럼 하나님과 사람들을 원망하는 원귀가 되지 않고 장차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풍성한 상급을 생각하고 도리어 기뻐하고 감사하였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18) 하셨고 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린도후서 4:17) 하신 말씀이 바로 사도 바울이 그토록 억울한 대접을 받고도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다가 받는 그 어떠한 핍박과 고통(육적 손실)도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수천 만 배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되돌려 받는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기뻐하였습니다. 이런 기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지키고 실행하는 가운데서만 생성됩니다.
사단은 지금껏 인류에게 자신(짐승)의 습성(죄악)으로만 살아가도록 가르쳐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라는 점을 이용해 요지부동의 강력한 여론을 조성시킨 후 그것을 무기 삼아 새롭게 사회에 뿌리 내려 정착하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심히 왕따시켜 소멸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8:35~36) 하심 같이, 사단의 이 같은 인해전술도 예수님의 말씀을 확신해 지키려는 그리스도인들을 결단코 세속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신앙인들이 사단의 이 같은 인해 전술로 인해 예수님과의 원천적인 관계에서 멀어지기도 하고, 더러는 지옥형벌이 두려워 예수님을 안 믿을 수가 없어서 신학이 만든 구원론에 안주해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 신학이 바로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받거나 지탄받을 수 있는 성경 내용, 곧 사도 바울과 같은 진솔한 하나님의 멧세지나 행동을 금기시해 가르치지 않고 어떤 죄인과 악인이 듣고 보아도 불쾌하지 않는 무난한 말과 행동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합니다, 즉 목사가 김일성 같은 악인들을 접하여도 환대받을 수 있는 말만 하고, 또 부패한 정치인들과 음란방탕한 연예인들을 접하여도 그들로부터 칭찬 받을 수 있는 말만 골라 가르칩니다.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한복음 17:19) 하심 같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성령)이 꾸짖고 질타하는 말씀들을 백프로 수용해 믿고 거룩하게 되었더라면, 자신들이 거룩하게 된 것처럼 그의 가족과 교회와 친족과 이웃과 사회와 나라와 민족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저들의 죄악과 거역과 추악한 습성들을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근거로해 꾸짖고 책망하였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저들로부터 모든 적대 행위, 곧 핍박과 환란과 따돌림을 당하게 되며 이 때에 사도 바울과 같이 기뻐하고 찬송하여야 합니다. 이런 행동이 바로 사도 바울이 가르치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말씀의 참된 어원입니다.
만일 이런 기쁨을 그리스도인들이 심령에 정착시키지 못하게 되면, 아무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는 예수님의 선전포고와 같은 말씀을 세상의 악하고 거짓되고 음란한 자들에게 말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을 대적해 의의 말씀으로 싸울 수 없고, 도리어 그러한 죄악 세상과 휴전협정을 맺고 화목하는 음녀로서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자기 대신 보낸 성령도 예수님과 동일한 일을 하십니다. 즉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한복음 16:8) 하셨습니다.
성령의 가장 중대한 사역은 세상 사람들의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어 죄악을 대적해 떠나게 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죄악을 깨닫게 하여 버려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실 수 있습니다. 즉 사람이 자기 심령의 그릇에 담겨진 내용물이 추악한 오물(사단)임을 깨달아 먼저 그것을 씻어 버린 후에라야만 비로소 정결한 꿀(복)을 담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의 죄악을 먼저 책망하여 버리게 하는 이런 순서(과정) 때문에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진실한 성도들도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환란과 핍박과 따돌림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같은 핍박을 성도들로 하여금 받게 하는 건, 세상 사람들의 심령에 또아리를 틀고 숨어 있는 마귀로 하여금 그 정체를 들어내어 활동하도록 하게 하는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즉 저들이 성도들에게 마구 저지른 악행에 대해 모세처럼 율법을 적용해 육신을 멸하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의 복음으로 용서해 주어야만 비로소 저들의 추악한 죄악이 씻겨 집니다. 이 시대 죄인들의 죄를 씻는 방법이 바로 이 시대의 신앙인들이 저들의 죗값을 대신 지고 험악한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모든 핍박과 환란에 대해 비통해 하지 않고 도리어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저들이 자신에게 쏟아부은 모든 악행을 예수님처럼 용서해 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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