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의 당당한 삶, 당사자·정부의 역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알리는 세상이 되길 바라며
13년 전에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장애의 이해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때 강사는 자폐성 장애의 특징을 말을 반복하는 것, 상동행동을 하는 것 등이라고 말했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혹시 자폐성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하면 말을 반복해 내 자신이 내용을 이해하고 알 때까지 다른 사람에게 확인하고 물어보는 성향이 있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남몰래 몸을 흔들면서 분노를 나 나름대로 표출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강의를 듣기 이전에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한 세심한 배려 없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다른 사람에게 훈계해댔다. 또한 장난으로 얘기하는 다른 사람의 의도를 나는 진담으로 오해하는 등 가족, 친구, 동료 등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었다.
강의를 듣고 난 후에도 이런 성향은 계속 있었고 가족들 중 엄마를 제외하고는 관계가 그렇게 썩 좋지 않았다. 가장 친한 작은 누나까지도 나의 그런 모습에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다.
그 가운데 12년 전, 작은 누나와 잠깐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너가 말을 반복하는 것,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농담과 진담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 등은 자폐성 장애가 있어 그런 것이었어. 장애라서 고칠 수 없는 거래. 그러니까 너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자신감 가지면서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누나가 얘기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장애가 있지만 그래도 30여년을 잘 버텼다는 기분에, 그리고 나의 좋지 못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라 그랬던 것 같다.
그 이후 엄마에게 ‘나 장애가 있는 것 맞아?’라고 물어봤다. 엄마의 대답은 ‘너가 장애가 있는 것은 맞지만 2%를 빼놓고는 다 고쳐졌어’였다. 대답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엄마가 내 장애를 더 일찍 알려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이 후진적인 우리 사회에서 내 아들이 장애가 있다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아들이 무시를 받을까봐 엄마가 나의 장애를 숨긴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장애가 있다고 나에게 말하면 내가 실망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이후 나는 내 장애에 대해 가장 친한 사람들에게 알렸다. 일부는 나의 장애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부분은 나를 이해했다. 그러면서 많은 친구들과 사귈 수 있었다. 사회복지학과 생활을 했을 때도 동생이자 한 친구에게 나의 장애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 친구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지금 그 친구는 결혼했지만 가끔 생각이 나서 내가 전화하면 반가워서 안부도 묻곤 한다.
2011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에 들어오면서 소장님은 나의 장애 특성들을 가족에게 들으며 자폐성 장애 중 아스퍼거 장애가 나에게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고 공청회를 다니면서 장애는 개인의 손상뿐만 아니라 사회의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같이 생각해야 되는 것임을, 그리고 병은 고칠 수 있는 것이지만 장애는 고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되며 내 안에는 ‘말을 반복하는 것도, 목소리 톤이 커지는 것 등도 장애니까 나를 이해해주겠지?’라는 등의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보고 소장님과 직장 동료들은 역차별이라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장애를 핑계 삼아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서로 평등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후 나는 나의 장애와 관련해 이런 생각을 한다.
‘나의 장애를 핑계 삼아 무작정 이해해달라고 하고 싶지 않다. 나의 장애로 인해 남의 권리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말을 반복하거나 목소리 톤이 아무 때나 높아지는 횟수를 줄이는 등의 책임과 노력을 다하고 주어진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 하지만 나의 장애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절망하거나 그러지는 않겠다. 장애는 특성이니까. 장애가 있어도 나는 제 것으로의 나, 즉 있는 그대로의 나인 제나를 사랑하는 것을 내 삶에서 실천하고 싶다.’
물론 제나를 내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참 쉽지 않고 나도 사람인지라 나의 장애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 싫은 소리를 들을 때에는 ‘차라리 내가 장애가 없었더라면’이라 생각하며 나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장애는 하나의 특성이고, 제나를 실천할 때 내 자신이 더 당당하게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면 기운이 난다.
장애를 고친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아직까지도 있는 우리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당당하게 사는 것이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일부 발달장애인의 폭력적 성향을 마치 발달장애 전체 특성인 마냥 생각하는 인식이 팽배한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현실이 나아지려면 법적으로는 장애인복지법상의 장애의 정의를 사회적 인식의 장벽 등을 포함한 사회적 모델에 기반해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가, 지자체에서는 장기적,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장애인식개선 계획을 세워 실천해야 한다. 복지관, 시설 등의 현장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은 발달장애인이 자신을 편들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도록 자기옹호 등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방법을 제대로 꾸준히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자신의 장애를 잘 알고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있는 장애에 대해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지원자들이 지원하고 당사자들은 그 기회를 잘 살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하는 등 자신을 사랑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지원자가 없이도 당사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알리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올 한해 발달장애인이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국가, 지자체, 전문가, 발달장애인 당사자 등이 합심해 노력하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이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으로 당당하게 살아 '제 것으로의 나'인 세상이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게 되는 시작점인 한 해가 되길.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 이원무 (wmlee73@naver.com)
/영남장애인신문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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